아이온·크로스파이어 등 대형 신작이 붐 조성
던전앤파이터 등도 선전 점유율 올 해 30%대로

한국 게임 업체들이 중국에서 다시 한 번 온라인게임 한류(韓流)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 온라인게임 초창기인 2003년 '리니지'와 '카트라이더' 등을 앞세워 70%에 육박했던 한국 게임 점유율은 이후 중국 정부의 견제와 현지 업체의 급성장으로 지난해 20%대까지 떨어지는 등 고전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한국 게임은 '아이온'과 '크로스파이어' 등 대형 신작이 등장하고, '던전앤파이터'와 '오디션' 등 기존 게임들도 선전하면서 중국 시장 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중국 정부는 외산 게임 관련 규제를 새로 만들고 자국 게임을 육성하는 등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인기 게임 열에 여섯은 한국산

지난 17일 오전 11시 중국 베이징 시내에 있는 '트랙스톱' PC방. 이른 시간인데도 40여명의 중국인이 PC 앞에 앉아 온라인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 게임에 열중했다.

"10명 중 2~3명은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을 합니다." 한국 게임 '미르의 전설'(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을 즐기던 PC방 관리자 딩쥔(丁軍·28)씨가 말했다. 그는 "단일 게임으로는 여전히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최고 인기지만, 한국 게임은 던전앤파이터·아이온·크로스파이어·오디션 등 많은 히트작이 동시에 인기를 끌면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옆자리에서 네오위즈게임즈의 총싸움 게임 크로스파이어를 즐기던 장린(張林·23)씨도 "한국 게임은 그래픽이 실감 나기 때문에 자주 한다"고 거들었다.

하루 1000만명이 방문하는 중국 최대 게임전문 사이트 17173닷컴에 따르면, 한국 게임은 인기 게임 톱10 순위 안에 6개나 이름을 올렸다. 액션(던전앤파이터)·총싸움(크로스파이어)·MMORPG(아이온)·자동차(카트라이더)·리듬 액션(오디션)·퍼즐(크레이지아케이드) 등 장르도 다양하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는 서비스 1년째인 이달 초 동시접속자 21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5000만명 이상의 게임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또 크로스파이어가 동시접속자 130만명, 아이온이 동시접속자 80만명을 기록하는 등 한국 게임들이 현지 게이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중국 게임 시장 좌우하는 한국 게임

한국 게임의 인기 상승에 중국 게임 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업체인 어낼리시스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현지 게임배급사인 텐센트가 지난 2분기 12억4000만위안(약 224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사상 처음 1위에 올랐다.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 등 인기 한국 게임 두 개를 동시에 붙잡은 덕분이다. 2위 역시 한국 게임 아이온을 서비스하는 샨다가 차지했다.

이처럼 한국 게임을 주력으로 하는 중국 업체가 나란히 1·2위에 오른 것은 우리 게임의 현지 영향력을 보여준다. 부동의 선두를 지키다가 텐센트의 한국 게임 협공에 밀려 2위로 내려온 샨다는 아이온이 본격적으로 매출을 올리기 시작할 3분기 이후 재역전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게임 전시회 '차이나조이'에서도 화제는 단연 한국 게임이었다. 넥슨과 NHN이 각각 5개와 3개의 게임을 선보인 것을 비롯해 20여종의 한국산 게임이 전시장을 채웠다. 샨다·텐센트·세기천성 등 중국 주요 게임업체들도 한국 게임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올 하반기 중국 시장 동향을 보여주는 대표 게임 전시회에 한국 게임들이 분위기를 주도한 것이다.

NHN은 하반기에 온라인 격투게임인 '정무세계'를 중국 시장에 선보인다. 이 게임은 모션캡쳐(사람의 실제 움직임을 미리 저장해놓고 게임 캐릭터에 반영하는 기술)를 활용해 실감 나는 격투 장면을 구현했다. NHN은 또 부동산 체험 게임인 '부옹의 꿈'과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인 '군주 스페셜' 등을 잇달아 선보여 중국 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외에 17173닷컴이 최근 발표한 기대 신작 순위 톱5에도 CJ인터넷의 '드래곤볼 온라인'과 NHN의 'C9'이 이름을 올리는 등 출시를 앞둔 한국 게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텃세

한국 게임이 재도약의 기미를 보이자 중국 정부와 게임 업체들은 심한 텃세를 부리고 있다. 우선 중국 정부는 지난달 외국 온라인게임을 겨냥한 강력한 규제안을 신설했다. 중국의 국가 심의를 받기 전에 현지에서 어떠한 홍보활동도 하지 못하게 한 것. 시범서비스를 통해 현지 이용자의 반응을 살피고, 개선작업을 할 기회가 박탈된 셈이다. 중국 정부는 또 폭력적·선정적 게임의 승인을 까다롭게 하는 '온라인 게임 정화 프로그램'을 향후 5년간 실시하기로 했다.

NHN 중국 게임포털인 아워게임의 심창섭 팀장은 "겉으로는 불건전한 게임의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해외 게임을 견제하고 자국 게임을 보호하려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게임 베끼기도 도를 넘어섰다. 중국의 유명 게임 업체 더나인은 최근 한국 게임 '뮤'와 흡사한 '산자이(山寨·모조품) 게임'을 선보였다. 이름도 '뮤 엑스'다. 더욱 황당한 것은 더나인이 '뮤'를 중국에 정식 서비스하고 있는 업체라는 사실이다. 더나인은 지난 수년간 뮤를 서비스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활용해 우리 업체 허락 없이 자체 후속작을 내놓은 것이다.

던전앤파이터·메이플스토리·오디션 등 현지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 게임들은 어김없이 산자이 게임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미르의전설2를 베낀 '전기세계'에 대한 4년의 법적 공방이 상호 합의로 흐지부지 끝난 이후, 중국에서 산자이 게임을 처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결국 산자이 게임은 계속 한국 게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업체

사실 정부의 규제나 산자이 게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중국 게임 업체 자체의 성장이다. 과거 해외 유명 온라인게임을 수입하는 데 치중했던 중국 업체의 자체 개발작 비중은 어느새 전체 시장 규모의 65%까지 올라갔다.

현재 중국에서 최대 동시접속자(250만명)를 기록하고 있는 '몽환서유'는 현지 업체인 넷이즈가 자체개발한 것이다. 서유기를 소재로 삼아 중국 특유의 동양적 판타지를 잘 표현한 게임으로 인정받으면서 각종 게임 인기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완미세계가 만든 '완미시공' 역시 세밀한 캐릭터 표현으로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 등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중국이 올해 311억위안(약 5조4000억원)에 이르는 자신들의 거대 시장을 해외 업체에 내주지 않기 위해 다양한 민관 지원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심의기관인 신문출판총서는 지난 2004년부터 5년 동안 100개의 자국 우수게임을 선정, 심의 간소화와 같은 다양한 정책적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지원받은 게임들은 대부분 동시접속자 10만~30만명의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 최대 게임업체인 샨다도 18기금(매월 18일에 지원 대상 게임을 선정해 자금을 준다는 의미)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소규모 게임개발사를 돕고 있다. 총 예산만 5300억원에 이른다.

이재성 엔씨소프트 상무는 "중국은 신화와 민담처럼 게임의 소재로 쓰일 만한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한데다 최근 들어 우리 업체와 기술적인 격차마저 줄어들면서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24/2009092401188.html